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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ern Europe

[노르웨이 여행] 스물셋 가을방학 3 - 비겔란공원, 오슬로대성당, 아케르스후스, 오페라하우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건물 외벽이 젖어 어제와 같은 동화적인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어딘지 모르게 삭막해 보였다.

비가 온다고 종일 숙소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발걸음을 서둘렀다.



첫 번째 행선지는 비겔란 조각 공원(Vigelandsparken).

노르웨이의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이 조각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원이다.

구스타브 비겔란은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희노애락을 테마로 13년 동안 공원에 설치할 작품을 준비했는데, 끝내 공원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예술가의 말로가 비극적일수록 작품이 가지고 있는 드라마를 강화한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비겔란이 죽은 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오슬로의 시민들이 합심해 조각 공원을 완성시켰다는 비화가 없었다면 비겔란 공원은 그저 원래 이름인 프롱네르 공원(Frogner Park)으로 불렸을 지도 모른다.


공원 초입에서부터 다양한 포즈와 표정을 짓고 있는 동상들이 줄 지어 있었다.

사람들은 비에 젖어 거무죽죽 해진 동상 앞에서 포즈를 따라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생각보다 공원의 규모가 컸고 단 하나도 중복되는 동상이 없었다.



공원에 자리한 여러 동상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심술쟁이 소년 상'이었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아이의 손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손때 탄 부분이 칠이 벗겨져 있는 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를 보기 위해 비겔란 공원까지 오는지 알 수 있었다.

오슬로의 랜드마크인 만큼 우리도 차례를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고 왔다.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비겔란 공원에 더 머물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빠져나와 칼 요한 거리에 있는 오슬로 대성당(Oslo domkirke)으로 향했다.

마침 미사를 드리는 시간인지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왔다.


벽면의 화려한 장식과 샹들리에, 그리고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까지 성당에 처음 가보는 나에게는 모든 게 흥미로운 것 투성이었다.

규모에서 오는 압도감도 대단했고 높은 천장에 그려진 그림의 섬세함이 감탄을 자아냈다.

성당 안에 자리한 무엇 하나 허투루 놓여 있는 게 없었다.

벽면 한 조각, 바닥 한 조각이 개별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천주교 신자였던 친구보다 오히려 내가 더 푹 빠져서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낮은 조도의 전등과 적막 속에 울려퍼지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좋아서 한참이나 의자에 앉아 오르간 연주를 들었다.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의 주위를 오르간 소리가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유럽이 배경인 어느 영화 속 한 장면 안에 놓인 기분이었다.



오후에는 아케르스후스(Akershus)에 갔다.

아케르스후스 성과 요새는 <겨울 왕국>의 아렌델 성의 모티프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나 역시도 아렌델에 간다는 마음으로 아케르스후스에 방문했다.

건물 외부 디자인부터 요새의 구조까지 아렌델과 꼭 닮아 있었다.


실제로 군사적 요새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근위병들이 성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중세 유럽의 어귀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요새 정원으로 가면 오슬로 시내와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길을 걸었다가 시내가 보이는 돌담에 앉았다가 갈매기를 쫓아갔다.

컴컴한 다리 밑으로 들어가 그림자에 녹아버리기도 했다.

아케르스후스 성도 둘러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요새만 둘러볼 수 있었다.



아케르스후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슬로 시청사가 있었는데 시청사 뒷길로 들어가면 시내가 나왔다.

명품 브랜드가 모인 상점가 옆에 '조 앤 더 쥬스(JOE & THE JUICE)'가 있었다.

다리도 아픈 만큼 잠시 쉬어갈 겸 카페로 들어갔다.


우리는 진저가 들어간 '섹스 미 업(SEX ME UP)'과 이름 그대로 아보카도를 뭉근하게 갈아낸 '아보셰이크(AVO Shake)'를 주문했다.

포스기로 주문을 찍고 진동벨이 울리면 음료를 가지러 가는 우리나라와 달리 조 앤 더 쥬스에서는 점원이 일일이 주문을 종이에 받아 적었고 음료가 나오면 이름을 불러주었다.

한 잔에 6천 원이 넘는다는 걸 생각하면 한국에서는 절대 사먹지 않을 양과 맛이겠지만 북유럽에서는 두 번이나 방문했을 정도로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카운터 벽면에 붙은 임팩트 있는 짧은 글귀가 눈에 띄었다.

Not yet. Not yet. Not yet. Not yet. Not yet. Eat me now. Too late. - Avocado -

(아직 아니야. 아직 아니야. 아직 아니야. 아직 아니야. 아직 아니야. 지금 먹어. 너무 늦었어. - 아보카도 - )



그리고 우리는 오페라하우스(Operaen)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오페라하우스에서 야경을 보는 것이었지만 9시는 넘어야 해가 겨우 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야경은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공연을 하고 있는 게 있다면 한 편 보기로 했는데 여석이 남아 있지 않아서 볼 수 없었다.


오페라하우스 밖으로 나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갔다.

사람들은 건물 외벽을 타고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도 뒤를 쫓았다.

바닷가 근처라 그런지 바람이 정말 태풍처럼 불었다.

치마가 뒤집히고 머리끈이 바람에 터져버렸다.

이 고난을 이겨내고 기어코 정상으로 올라가려는 우리의 모습이 우리가 생각해도 우스웠다.


히말라야 정상을 오르는 마음으로 꼭대기에 올라오자 사람들이 경사진 곳에 앉아서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만 덜 불었다면 아름다웠을 텐데 너무 심하게 부는 탓에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앉아 있다가 바람에 얼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또 한 번 치마가 뒤집히고 머리가 산발이 되어가며 건물 아래로 내려갔다.



저녁을 먹기 위해 오페라하우스 인근의 식당가로 갔다.

딱히 뭘 먹을지 계획을 세운 게 없어서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가 첫 번째로 들어간 식당은 트립어드바이저에서 꽤 평이 좋은 곳이었다.

메뉴 가격대도 평균 한화로 2만 원 중반대길래 염려 없이 들어갔다.

식사를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 안은 한산했다.


"실례합니다."


카운터에 서 있는 직원들 중 한 명도 우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못 들은 건가 싶어서 몇 번 더 그들을 불렀지만 우리에게 눈길 조차 주지 않고 그들끼리 떠들며 잔을 닦았다.

레스토랑 매니저 명찰을 단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도와드릴까요?"

"네, 두 명이예요."

"죄송하지만 자리가 없어요."

"그러면 빈자리는 예약되어 있는 건가요?"

"아뇨. 두 분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었다.

웃어 보이며 문을 가리키는 레스토랑 매니저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얼른 식당에서 빠져나왔다.

심장이 요동쳤다.


식당 밖에는 아이를 업은 한 아저씨가 메뉴를 보고 있었다.


"여기 맛있던가요?"

"모르겠어요. 자리가 없다던데요."

"자리가 없다고요?"

"네. 자리가 없대요."


아저씨는 의아해 하며 손님이 몇 앉아 있지 않은 식당 안을 들여다 보았다.

우리는 한 동안 말 없이 주변을 걸어다녔다.



굳이 멀리 가고 싶지도, 특별히 맛있는 걸 먹고 싶지도 않은 기분이라 황당한 일을 당했던 식당 바로 건너편에 있던 곳으로 들어갔다.

실내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도 했고,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 게 어쩐지 '유럽다운' 경험을 하는 것 같아서 야외 테이블에 앉기로 했다.


두 번째로 방문한 식당에서는 이전 식당처럼 웨이트리스가 대놓고 면박을 주는 일은 없었지만 응대하는 에티튜드가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메뉴판을 주지 않았고, 아무리 불러도 주문을 받아주지 않았다.

다른 식당에 가버리면 그만일 수도 있었지만 한 번 당하고 온 게 있는지라 더 독하게 행동했다.

일부로 주방 앞까지 찾아가 주문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겨우 시킨 음식을 받았다.

노르웨이의 가정식이라고 할 수 있는 해산물 수프와 소스가 적어 뻑뻑한 까르보나라, 다른 테이블도 보통 이렇게 시키길래 따라서 시켰다.

저녁 식사를 먹기까지 일어난 일들이 너무 마음이 상해서 맛이 어떤 지는 잘 느껴지지도 않았다.

지금에야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그렇게까지 상처받지는 않을 텐데, 당시에는 우리 둘 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서 오래도록 마음을 썼던 것 같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컵라면에 볶음김치를 먹었다.

배가 고픈 건 아니었지만 그냥 컵라면이나 먹으며 속상한 일을 씻어 내리고 싶었다.

역시 음식에는 고춧가루가 들어가고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