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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ern Europe

[노르웨이 여행] 스물셋 가을방학 5 - 오전의 플람, 오후의 베르겐

7시쯤 눈을 떴다.

같이 방을 썼던 사람들은 일찍이 하이킹을 하러 떠났는지 방 안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덕분에 마음 편히 나갈 채비를 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구름이 어제보다 더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플람을 가득 채운 녹색빛도 어쩐지 어제 보다 더 짙어진 것 같았다.

아침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역으로 걸어갔다.


양들은 먹을 만한 풀이 모자랐던 건지 아래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양떼를 따라 나란히 걸어 내려갔다.



베르겐으로 가는 페리를 탈 때까지 5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플람역 배기지 카운터에 캐리어를 맡기고 주변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플람역 주변에는 온통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 뿐이었는데, 대부분 트롤 장식품이나 순록 가죽을 팔고 있었다.

가게 규모나 분위기만 다르지 파는 물건은 비슷했다.


산악열차 박물관도 있었는데 플람까지 운행하는 산악열차와 철로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과정을 전시해 둔 박물관이었다.

별로 볼 건 없었지만 역 주변에 할 만한 게 딱히 없어서 그런지 박물관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꼬마 열차나 전동 보트처럼 액티비티도 소소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꼬마 열차라도 타볼까 고민했지만 생각 보다 이용료가 비싸서 타보지 못했다.



플람에는 식당도 몇 군데 없었는데 피자와 파스타를 파는 식당 두 곳과 푸드트럭 네다섯 개가 전부였다. 

평소 같았으면 푸드트럭 음식으로 대강 끼니를 떼웠겠지만, 전날 저녁을 대충 먹었던 탓에 식당에 가기로 했다.

페퍼로니 피자와 까르보나라를 시켰다.

이제껏 노르웨이에 와서 먹은 음식 중 가장 입에 맞았다.

피자 한 조각 조차 남기지 않고 깨끗이 접시를 비웠다.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기념품 상점에서 점 찍어뒀던 순록 인형을 하나씩 샀다.

강과 산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페리가 올 시간을 기다렸다.

맞은편 의자에 전날 호스텔에서 만났던 태국인 부자가 와서 앉았다.


낯선 땅에서 세 번이나 마주쳤으면 인연이다 싶은 생각에 그의 옆으로 가 말을 붙였다.

그의 이름은 패트(Patt), 태국에서 왔고 아버지와 세계 여행 중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는 패트는 영화를 전공한다는 나에게 카메라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왔다.

그동안 작업했던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보스(Voss)를 거쳐 나보다 하루 늦게 베르겐으로 갈 예정이라는 패트는 베르겐에 먼저 도착해서 어떤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우리는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교환하고 인사를 나눴다.

북유럽을 여행하는 내내 패트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서로의 여행에 대한 연락을 주고 받았고, 지금도 종종 연락을 하고 지낸다.

플람의 페리 선착장이 좋은 친구를 만들어 준 것 같아 고마울 따름이다.



오후 세시 반, 베르겐으로 가는 페리에 탑승했다.

피요르드 위로 배를 타고 지나가기 때문에 기차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송네피요르드(Sognefjord)를 감상할 수 있었다.


객실 안에 자리를 잡아두고 계단을 올라갔다.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배가 물결을 가르며 수면 위로 흔적을 새기고, 다시 물결이 모여 흔적을 지우길 반복했다.

무한한 반복 운동을 뒤로 한 채 배는 앞으로 나아갔다.


산 위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시 객실로 내려갔다.



5시간 정도 페리를 타고 달렸을까, 베르겐의 아기자기한 풍경이 보였다.

날이 천천히 어두워졌고 건물 마다 하나 둘 불이 들어왔다.

15분 후면 배가 선착장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베르겐에서 머물기로 한 숙소의 호스트 헨리(Henry)가 베르겐 페리 터미널(Bergen Strandkaiterminal)로 픽업을 와준다고 해서 미리 연락을 취했다.

헨리는 벌써 터미널 건너편에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페리에서 내려 헨리가 있다는 곳으로 가보니 내 이름이 붙은 차가 있었다.

차에서 내린 헨리가 우리를 만갑게 맞이해주며 짐을 차에 실어주었다.

터미널에서 Herman grans vei에 있는 헨리의 집까지는 15분 정도가 걸렸다.


"오슬로랑 플람은 어땠어?"

"좋았어요. 아름답고 놀라웠어요. 근데 조금 지루했어요."

"하하, 맞아. 주변에 아무 것도 없지. 하지만 그래서 좋지 않았어?"


헨리는 집으로 가는 언덕을 오르며 마트와 버스 정류장이 어디에 있는 지도 알려주었다.

베르겐은 구글맵 대중 교통 검색이 안 되는 지역이라 오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는데, 헨리 덕분에 머무는 동안 헤맬 일 없이 잘 다닐 수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거리를 사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 밖에는 말도 안 되는 야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르겐 시내의 전경이 불빛으로 수 놓아져 있었다.

물 위에 번진 지상의 빛이 옅은 파도를 따라 천천히 흩어졌다.

담장에 기대어 오래도록 베르겐의 야경을 두 눈에 담으려 애썼다.


"우리 내일도 꼭 야경 보자."


약속을 접어 호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언덕 아래의 불빛이 우리의 뺨에 와 닿았다.

베르겐에서의 첫날 밤을 지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