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에서의 사흘 동안 Welhavens gate에 위치한 잔(Zan)의 집에서 지냈다.
스톡홀름과 플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예약했다.
잔은 메일로 대문 위치를 표시한 지도와 함께 문을 여는 방법을 상세하게 적어 보내주었는데 건물 구조가 복잡해서 대문을 찾고도 한참을 헤매야 했다.
'My place is on the second floor, there is a picture of a snake attached to the door. The key is going to be under the door mat. (우리 집은 2층이고 문에 뱀 그림이 붙어있어. 열쇠는 도어 매트 아래에 있단다.)'
우리가 혼선을 빚은 가장 큰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북유럽에서는 모든 건물 층수가 1층이 아닌 0층부터 시작한다.
그러니까 잔의 집은 우리 기준으로 3층에 있었던 것이다.
그걸 알 리가 없었던 우리는 대문 안의 모든 건물 2층에 올라가 뱀 그림을 찾다가 포기했고 잔에게 연락을 했다.
다행히 집 근처에 있었던 잔이 우리를 발견하고 집으로 안내해주었고 더 헤맬 일 없이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다음 날 8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얼른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숙소 밖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서 가짜 같았다.
청명한 하늘과 맑은 공기, 게다가 한여름에 습기 하나 없이 선선한 날씨라니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우리는 근처 마트에서 요거트를 하나씩 사서 입에 물고 오슬로 패스를 사기 위해 인근 호텔로 갔다.
오슬로 패스는 오슬로 중앙역 인포메이션 센터나 오슬로 패스를 판매한다고 알림이 붙어 있는 호텔 로비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전날 밤 인포메이션 센터가 닫을 시간에 오슬로에 도착했던 우리는 아침에 국립미술관 근처에 있는 호텔을 찾아가서 구매했다.
오슬로 패스는 2일권 기준 476NOK, 한화 약 65,000원으로 이틀 동안 패스 하나로 시내 교통편 뿐만 아니라 미술관을 비롯한 명소 입장을 다 해결할 수 있었다.
교통만 해결하기에는 패스를 사는 게 훨씬 비싸지만 명소를 한 군데라도 방문할 경우 패스를 구입하는 편이 이득이었다.
패스를 사서 노르웨이 국립미술관(Nasjonalgalleriet)으로 갔다.
개장 10분 전이었는데 계단 아래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견학을 온 학생들 무리도 보였고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도 있었다.
입장 하는 데까지 20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다.
미술관 내부는 마치 왕궁 같았다.
무엇보다 섹션 별로 테마에 맞게 각기 다른 색으로 벽을 칠해둔 게 인상 깊었다.
벽의 색상이 연속되는 작품에 서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대형 작품 앞에는 소파가 놓여 있었다.
한 노부부는 우리가 섹션을 다 돌고 오는 동안에도 내내 소파에 앉아 같은 그림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미술에 큰 조예가 없는 나는 각각의 작품 보다는 작품들이 어떻게 전시되어 있는 지와 미술관의 구조적인 특징이 어떠한 지가 더 눈에 들어왔다.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이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동상처럼 유명한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고흐의 그림도 그림인데, 젖먹이들이 엄마 품에 안겨 고흐의 그림을 보고 있는 게 더 신기했다.
로댕의 동상 앞에도 초등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아빠와 동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집 앞의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과 로댕의 동상을 보고 자라면 자연히 예술적 감수성이 생겨날 수 밖에 없겠다 싶었다.
학교 수업이나 성적 따위가 아닌 로댕과 고흐에 대해서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어린 아이들이 사뭇 대단하고 부럽기도 했다.
노르웨이는 뭉크의 도시인 만큼 뭉크의 작품은 따로 섹션이 구분되어 있었다.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예상대로 '절규'였다.
사람들은 줄을 서가면서 절규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절규를 보고 나서 피카소 작품이 걸린 섹션을 돌고 미술관을 빠져 나왔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 앞에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르웨이 왕궁으로 가기 전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식당에 가려다가 날씨가 너무 좋아 먹을 걸 사서 공원에서 밥을 먹기로 하고 '텍스 버거(TEX Burger)'에 들어갔다.
가장 대표적인 메뉴인 것처럼 보이는 빅 텍스 버거(Big TEX Burger) 단품 하나와 세트 하나를 주문했다.
아저씨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패티를 굽다가 갑자기 나를 부르셨다.
페인트통 같이 생긴 통에서 소스에 버무려진 양배추 샐러드를 한 스푼 뜨더니 먹어보라고 주셨다.
영문을 모른 채 일단 입에 넣었는데 버거에 넣어도 괜찮겠냐고 물어보셨다.
매운 소스도 있으니 입맛에 안 맞으면 말하라고 하시는 아저씨에게 그냥 다 괜찮으니 오리지널로 부탁한다고 했다.
섬세한 배려는 감사했지만 오슬로에 온 이상 이곳의 룰을 따르고 싶었다.
버거를 받아들고 근처 공원으로 갔다.
분수대 주변에 앉아 샌드위치나 스시도시락 같은 걸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그들 곁에 자리를 잡고 버거를 먹었다.
바람이 다소 차가웠지만 햇볕이 내려 앉아서 쌀쌀하지는 않았다.
끼니를 해결하고 노르웨이 왕궁(Der Kongelige Slott)으로 가기 위해 공원을 가로질러 지나며 스냅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강아지를 만났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일렉기타 버스킹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공원의 동상 아래에는 기타 버스킹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평일 대낮임에도 유유자적 공원을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많았다.
내가 생각하던 유럽의 여유로운 분위기 그대로였다.
그 아래 섞여 있을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공원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니 왕궁이 나왔다.
상상하던 왕궁의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날씨가 좋아서 풍경 앞에 주저 앉아 있기 딱 좋았다.
한시 반에 근위병 교대식이 있다고 해서 청색 동상 아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유달리 대형견들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입마개를 하고 다니지 않아도 돼서 아이들이 조금 더 자유로워 보였다.
주변에 산책하기 좋은 장소들도 많으니 이런 곳에서라면 대형견들이 더불어 살아가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위병 교대식은 TV에서 보던 영국 근위병들의 일사분란한 장면을 기대했어서 그런지 다소 실망이었다.
서로 보고를 하고 총기를 몇 번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오슬로 시청사(Oslo Rådhuset)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시청사 근처로 가니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푸른 바다가 나왔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리 둘은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날이 좋아서인지 눈 앞의 광경이 더욱 실제같지 않았다.
특히 바다 위를 장식하는 구름이 방금 누가 그려놓고 간 것 같았다.
잔물결 위로 부서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한동안 나루에 앉아있었다.
오래도록 같은 풍경을 보고 있는 데도 새로웠다.
구름의 위치가 바뀔 때마다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다.
오슬로 시청사는 바다 건너편에 있었다.
건물 내외부가 마치 미술관처럼 꾸며져 있었다.
시청사 2층으로 올라가니 창밖으로 건너편의 바다가 보였다.
창문 너머로 보는 바다는 느낌과 또 달랐다.
시청사 곳곳에 앉을 만한 자리도 많이 마련되어 있고, 화장실이 무료라서 휴식을 취하러 온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우리는 바다 앞에서 충분히 쉬었다 왔기에 빠르게 둘러보고 시청사를 빠져 나왔다.
오슬로에서의 여유로운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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