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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ern Europe

[덴마크 여행] 스물셋 가을방학 7 - 코펜하겐으로, 티볼리공원


오후 8시, 노르웨이지안 항공을 타고 베르겐에서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이동했다.

비행기 창밖으로 해가 서서히 져가는 것이 보였다.

베르겐 플리스랜드(Bergen Flesland)에서 코펜하겐 카스트러프(Copenhagen Kastrup)까지는 한시간 남짓 걸렸다.


짐을 찾아 메트로를 타러 갔다.

공항에서 메트로로 이어지는 출구로 걸어가니 DSB창구가 있었다.

그곳에서 프레데릭스버그(Frederiksberg)까지 가는 대중교통 1회권을 구입해 20분 정도 이동했다.


역에서 내리자 자정은 된 것처럼 어둡고 조용했다.

거리에 사람은 커녕 차 한 대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무서운 마음에 숨을 죽여가며 숙소로 걸어갔다.

10분 정도 걸렸는데, 초행길에 밤길이라 그런지 30분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짐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뻗어버렸다.



다음 날 우리는 티볼리(Tivoli)로 갔다.

티볼리공원은 개장한 지 무려 175년이나 된 세계 최초의 놀이공원이다.

단순 오래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놀이공원에 최초로 테마를 도입한 곳이기도 하다.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를 만들기 전 티볼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니, 미키타운이 티볼리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티볼리는 뜸금없을 정도로 도심 한 복판에 위치해 있었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꼭 놀이기구를 타지 않더라도 오며 가며 들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1인당 230DKK, 한화 약 39,000원을 내고 자유이용권을 끊었다.

보통은 입장권만 사고 들어가서 타고 싶은 놀이기구 마다 따로 티켓을 추가로 사는 경우가 많지만, 5개 이상을 탈 거라면 자유이용권을 끊는 게 이득이었다.


개장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공원 내부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은 많았지만 대부분 산책을 하거나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어서 놀이기구를 타는 데 5분 이상 기다린 적이 없었다.

하차 전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으면 한 번 더 타겠냐고 물어보고 연속으로 태워주기도 했다.

그 덕에 결과적으로 30번 정도 놀이기구를 타고 나왔으니, 여러모로 자유이용권을 사는 편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입장해서 가장 먼저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롤러코스터를 탔다.

100살도 더 된 코스터로, 티볼리공원과 역사를 함께 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 오랜 역사를 고스란히 이어가고 싶었던 것인지 여전히 수동 방식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안전바 확인을 끝낸 후 코스터 중앙부에 직원이 올라타 코스터를 운전했다.

손잡이를 돌려가며 코스터의 방향을 조정하고 함성을 질러야 할 때 손을 들어 신호를 주기도 했다.


운전사의 모습을 보려고 코스터를 두 번 더 탔다.

여유 넘치는 운전 솜씨와 코스터에 탄 사람들을 지휘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무엇보다 즐거워 보였다.



이어서 공중그네(The Star Flyer)를 타러 갔다.

자이로드롭과 비슷한 높이에서 외줄에 매달려 한 방향으로 빙빙 도는 기구로 바람에 따라 그네가 한 쪽으로 기울어지거나 마구 흔들리기도 했다.

롯데월드에 있는 회전그네와는 차원이 다른 높이고 차원이 다른 속도였지만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는 우리에게는 코펜하겐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망대에 불과했다.



티볼리공원 한 편에는 중국을 테마로 한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다.

용의 모습을 모티프로 한 롤러코스터가 머리 위를 지나다녔고 곳곳에 중국 거리처럼 홍등이 걸려 있었다.

중국 야시장의 모습을 재현한 것 같은 식당가에는 만두나 스시 같은 동양권 음식을 팔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자 홍등에 불이 들어왔다.

낮보다는 해가 지고 나서의 풍경이 훨씬 중국 같고 아름다웠다.



저녁은 티볼리 푸드 홀(Tivoli Food Hall)에서 해결했다.

공원 내부에 있는 푸드코트 같은 곳인데 티볼리에 입장하지 않고 푸드 홀만 이용할 수도 있었다.

들어갈 때 직원분께 다시 티볼리 가든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니 손등에 도장을 찍어주셨다.


우리는 전기구이 통닭과 비슷한 닭구이와 베지 피자, 그리고 칼스버그 2잔을 시켰다.

음식도 다 해서 3만 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식당에서 사먹는 것보다 훌륭했다.

특히 칼스버그가 환상적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칼스버그를 찾았을 만큼 맥주가 정말 맛있었다.


한창 밥을 먹고 있는데 관리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자리를 한 칸만 바깥쪽으로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스피커 전선이 뽑혀서 손을 봐야 하는 모양이었다.

옆에서 스피커 선을 매만지며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왔다.


"한국이요. 아세요?"

"그럼요. 한국에서 왔군요. 흥미롭네요. 덴마크는 어떤가요? 좋은가요?"

"덴마크는 아직 모르겠지만 티볼리는 좋아요."

"다행이네요. 재즈도 좋아하나요?"

"그럼요. 좋아해요."


남자는 무심한 듯 재즈를 틀고서 자리를 떴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재즈에 섞여 들어갔다.

재즈 때문인지, 칼스버그 때문인지 괜히 마음이 들뜨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다시 티볼리 가든으로 돌아왔다.

분수대 옆 광장에서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저마다 맥주 한 캔씩 손에 쥐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잔디밭, 맥주, 그리고 음악.

내가 상상하던 유럽의 저녁 그대로였다.



티볼리의 진가는 해가 진 뒤에야 목도할 수 있었다.

놀이기구 마다 불이 들어왔다.

티볼리 가든에는 꽃 대신 불빛이 자리를 꾸미고 있었다.

야경을 보러 공원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어두워 질 수록 사람이 더 많아졌다.

우리는 깊어가는 티볼리의 밤을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