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돌아오자 마자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혼자 만의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다른 블로거들의 여행기를 읽다가 료칸이 눈에 띄었다.
온천이 딸린 화실에서 온전히 나만을 위한 하루를 보내는 것, 혼자 만의 여행이라는 테마에도 어울릴 것 같았다.
그렇게 교토에서 돌아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유후인 료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후쿠오카에서 3일을 보낸 뒤 돌아오는 일정을 계획했다.
후쿠오카 공항으로 IN-OUT을 하는 항공편이 아무래도 가장 저렴하긴 했지만, 오이타 공항에서 유후인으로 가는 게 교통면으로 효율적이었기에 오이타 공항 IN - 후쿠오카 공항 OUT으로 항공편을 예매했다.
오이타 공항으로 취항하는 항공편은 에어서울 뿐인데, 그마저도 오전 9시 한 대 밖에 운항을 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전날 인천공항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하고 출국했다.
오이타 공항은 매우 작았고 사람도 별로 없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배기지 카운터로 나오는 데까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편의점에서 타마고산도를 사서 간단히 끼니를 떼우고 밖으로 나갔다.
오이타 공항에서 유후인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했는데, 버스 시간이 1시간도 넘게 남아서 한참을 앉아서 기다렸다.
챙겨간 소설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버스를 타고 다시 한시간 남짓 달려 유후인에 도착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깨가 젖을 정도는 아니었고 수 분 만에 금방 그치긴 했지만 시작부터 비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도착하자 마자 유후인역에서 료칸으로 짐을 보내기 위해 치키서비스 카운터를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구글맵이 가리키는 대로 '초록색 지붕'을 찾아서 왔는데 간판도 사라지고 없었다.
30분을 넘게 유후인역 주변을 헤매다가 유후인역 인포메이션 센터로 갔더니 바로 뒤에 치키서비스 카운터가 있었다.
인포메이션 센터 자동문 바로 앞에 치키서비스 카운터가 이전했다는 알림이 아주 작게 붙어 있었다.
허탈했지만 어찌됐든 다행이라 생각하며 료칸으로 짐을 보냈다.
홀가분하게 유후인역으로 돌아와 료칸에 전화를 걸어 송영서비스를 예약했다.
료칸 주인 아저씨와 몇 마디 일본어로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일본에 다시 왔다는 게 실감났다.
송영서비스 예약까지 무사히 완료하고 유후인 상점가와 인근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상점가 반대편에는 고즈넉한 주택들이 모여 있었다.
주택가 옆으로 강물이 고요히 흘렀고 정면에는 구름이 드리운 낮은 산이 보였다.
강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낚시를 하는 아저씨들과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가는 학생들이 유후인의 풍경을 함께 수 놓았다.
긴린코 호수를 향해 걸으며 눈에 띄는 가게가 있으면 들어가 구경했다.
유후인 상점가의 상징과도 같은 토토로 상점에도 들렀다.
토토로 상점은 일본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있긴 하지만 지브리 특유의 분위기가 유후인 상점가와 유달리 잘 어울려 보였다.
원체 유명한 가게다보니 상점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파가 싫어서 오래 둘러보지는 않고 금방 나와버렸다.
이곳저곳 구경하며 40분 정도 걸어 도착한 긴린코 호수 역시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비교적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 호수를 바라보고 섰다.
안개가 껴서 멀리까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마음은 홀가분해졌다.
그 때 한 일본인 아저씨가 걸어와 나에게 말을 붙였다.
"일본인 입니까?"
"아니요. 한국에서 왔어요."
아저씨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자신이 찍은 긴린코 호수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안개가 걷힌 날의 긴린코 호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이야기했다.
아저씨 말 대로 눈 앞의 긴린코 보다는 사진 속의 긴린코가 조금 더 아름다워 보였다.
"아름다운 긴린코를 보지 못하다니 운이 나쁘네요."
"그런가요?"
초면의 일본인 아저씨에게 운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운이 나쁜 게 이정도라면, 운이 나쁜 것도 마냥 나쁘지 만은 않겠다 싶어서.
역 쪽으로 다시 걸어내려와 '타케오'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타케오'씨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채소와 달걀 지단, 그리고 김을 얇게 썰어 올린 '타케오동'을 파는 집이었다.
점심을 먹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어서 그런지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타케오씨와 어머니로 보이는 노파, 두 사람 뿐이었다.
큰 도마가 놓인 타케오씨 앞에 동그랗게 좌식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좌식 테이블에 앉으면 타케오씨가 음식을 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즉석에서 모든 재료를 하나 하나 손질하기에 음식이 나오는 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할머니께서 먼저 젓가락과 미소 시루, 그리고 우롱차를 내주셨다.
한참 만에 받아 본 타케오동은 생에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채소의 맛이 각기 다르게 느껴졌고 채소 아래 숨은 회와도 잘 어우러졌다.
신선한 샐러드에 밥을 같이 먹는 것 같았는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것 같지만 의외로 잘 어울렸다.
덮밥에 따로 양념이 없어 심심하기 때문에 간이 센 미소시루와 조합이 좋았다.
기분 좋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역으로 얼른 걸어갔다.
송영서비스를 예약한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급했던 와중에도 편의점에 들려 온천하며 마실 맥주를 사는 건 잊지 않았다.
맥주 두 캔이 든 봉투를 꼭 쥐고 주인 아저씨의 차를 기다렸다.
유후인역 위로 먹먹하게 드리워져 있던 구름이 조금씩 걷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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