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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후쿠오카 여행] 나 홀로 후쿠오카 4 - 고양이섬, 아이노시마에 가다


이번 후쿠오카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이노시마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후쿠오카에 가기 전 서점에 들렸다가 우연히 세계 각지의 고양이 마을을 주제로 한 사진집을 발견했는데, 그 책을 뒤적이다가 아이노시마를 알게 되었다.

블로그 후기도 몇 개 없었고, 여행 관련 책자에서도 다루고 있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구하고자 하면 구해진다는 믿음을 쥐고 여정을 떠났다.


아이노시마까지는 하카타역에서 출발하는 것을 기준으로 JR카고시마본선을 타고 훗코다이마에역에 내려 버스와 배를 각각 타고 들어가야 한다.

지하철, 버스, 배 세개 중 하나라도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꼬박 세시간은 기다려야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더 끔찍한 것은 날씨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배가 뜨지 않아 맨 손으로 돌아오게 될 수도 있다.

그 위험 부담과 변수를 안고서 아침 일찍 일어나 하카타역으로 향했다.


JR카고시마본선을 타고 훗코다이마에역에 내려 북쪽 출구로 나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시간표를 보면 배가 표시되어 있는 시간이 있는데 그 버스를 타야만 배 시간에 맞춰 항구에 도착할 수 있다.

버스는 1번, 1-1번, 1-2번 세 개 중 어느 것을 타도 무방하고 종점인 신구항에 내리면 된다.

신구항 대합실 자판기에서 아이노시마로 들어가는 배편을 구입해 배를 타고 들어가면 되는데, 편도로만 구입할 수 있어 나오는 표는 아이노시마 대합실에서 같은 방식으로 사야 한다.

JR 승차권이 280엔, 버스가 100엔, 배삯이 460엔이었으니 아이노시마까지 가는 데만 교통비가 만 원 가까이 들었다.



신구항까지 가는 버스 안에는 나와 한 일본인 부부 밖에 없었다.

내려서도 대합실에는 오직 우리 세 사람 뿐이었다.

부부는 홀로 앉아 아이노시마 지도를 살펴보는 나에게 타마고산도와 나시쥬스를 나누어주었다.


"저는 후유미고 이쪽은 제 남편 다케시입니다."


부부는 자신들의 고양이 레오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레오가 죽은 뒤로 종종 아이노시마에 찾아온다고 하며, 그동안 다케시가 아이노시마에서 찍은 사진을 몇 장 보여주었다.

아이노시마 대합실에도 다케시의 사진이 붙어있다고 했다.



배 시간이 다 되어 후유미, 다케시 부부와 나란히 선착장으로 갔다.

선착장으로 가는 길목에서부터 고양이들이 대여섯마리 보였다.

사람의 손길이 익숙한 아이들인지 자연스럽게 다리에 머리를 부벼댔다.

고양이들을 마주하자 수평선 너머 어스름히 보이는 아이노시마가 더욱 기대가 되었다.




20분 정도 배를 탔을까, 육지가 보였다.

섬에 가까이 왔을 뿐인데 벌써부터 고양이 특유의 냄새가 났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없는 데도 코가 조금 따가웠다.


선착장에 내리자 턱시도 고양이 한 마리가 내게 엉겨붙었다.

주저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기분이 좋은지 다리 사이를 지나다녔다.

후유미씨가 어깨를 두드렸다.

같이 다녀도 좋을 것 같았지만 부부에게 방해가 되는 것 같아 그냥 짧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턱시도 고양이가 앞장을 섰다.

고양이를 따라 아이노시마로 들어갔다.



섬에는 연로한 어르신들과 고양이들 뿐이었다.

식당 하나와 대합실, 바다와 고양이가 전부인 마을은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고양이들은 마을 어르신들의 예쁨을 많이 받고 지내서인지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전혀 없었다.

저마다 쓰다듬어 달라고 성화였다.

한 아이도 빠짐없이 머리를 매만져주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네코쨩(고양아), 하고 고양이를 부르면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 내 주변을 감쌌다.

마을의 한 어르신이 내게 다가오셨다.


"흰색 아이들은 시로쨩(흰둥이), 검은색 아이들은 쿠로쨩(검둥이), 나머지는 그냥 아이쨩(사랑이) 하고 불러주면 돼요."

"한국에서는 고양이를 '나비야'라고 불러요."


고양이들의 이름을 알려주고 가신 어르신은 길을 걸어가는 내내 한 아이도 빼놓지 않고 말을 붙이셨다.

고양이의 눈높이에 맞게 연신 허리를 숙여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오늘 하루는 어떠니, 

어디 아픈 데는 없니, 

친구들이랑은 사이 좋게 지내니,

아마 그런 것들을 다정하게 물어보셨으리라.



1시간 정도 섬을 돌아봤을까,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챙겨오지 않아 비를 피하기 위해 대합실로 돌아가는데 마을의 한 할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셨다.

할아버지는 집으로 쫓아 들어가더니 우산을 챙겨주셨다.

후에 배를 타기 전 우산을 돌려드리러 찾아갔는데 언제 다시 비가 쏟아질지 모른다며 그냥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


"또 보자."


다시 돌려드릴 수 있을지 모르는 우산과 다음을 기약하자는 말을 받아들고서 발길을 돌렸다.

비는 그쳤지만 젖은 몸 때문에 추운 건지 고양이들은 서로 살을 맞대고 풀밭에 잠들어 있었다.



대합실로 돌아와 육지로 가는 배편을 발권했다.

다케시와 후유미 부부가 먼저 대합실에 와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다케시는 대부분 어딘가 아파 보이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왜 아픈 아이들만 찍었냐고 물어보니 다음에 왔을 때 만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레오 생각이 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후유미, 다케시 부부와 함께 배를 탔다.

훗코다이마에에 도착하고 잘 지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시 각자의 길로 발길을 옮겼다.


고양이들을 보러 떠난 먼 여정이었지만 고양이 만큼이나 많은 다정을 보고 돌아왔다. 

고양이와 고양이 간의 다정, 고양이와 마을 어르신들 간의 다정, 후유미씨와 다케시씨 간의 다정, 그리고 그들과 나 사이의 다정.


새벽부터 지하철과 버스, 거기다 배까지 타야하는 초행길에 오른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후회 없었다.

언젠가 우산을 돌려주러 아이노시마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타마고산도와 나시쥬스를 나눠주리라 생각하며 지하철에 올랐다.